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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7. 주일 2

1:20~33 지혜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33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일천번제를 마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하였었지요. 하나님은 그러한 솔로몬을 아주 귀히 여기시며 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좋은 것들을 풍성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가장 가치 있는 보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듣는 마음이 있으면 어디서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분이시며 그 분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하신 것입니다. 2:3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듣는 마음은 하나님의 새 언약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항상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1. 태초부터 계신 지혜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십니다.

1)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태초부터 계신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과 함께 모든 사람이 멸망속에 빠져버린 이후 하나님은 구원받을 수 있는 지혜의 새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3:15). 그 지혜의 말씀이 이천년 전에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3)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십니다. 지혜가 부르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11:28절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지혜가 이처럼 부르십니다.

4) 누구나 듣고 붙들어야 하는 구원의 새 언약의 말씀을 듣고 구주로 모시는 것이 지혜이며, 그와 반대로 지혜를 듣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지혜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지혜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조금만 귀를 열고 기울이면 지혜는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 사람들이 지혜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22절에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하였습니다. 지혜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혜가 멀리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의 '어리석음''거만함' 때문입니다.

2) 사람이 어리석음에 빠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 중심이 되어버린 사람의 '교만'에 있음을 잠언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24~25절의 거만함이란 지혜를 듣기 싫어하는 것이요 지혜를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거만함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된 내가 나의 주인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3) 인간의 모든 비극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반역했을 때 모든 사람이 원죄아래 빠져버렸습니다. 아담은 모든 인간, 즉 생명의 시조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함으로써 오히려 죄로 인한 죽음의 시조가 된 것입니다.

4) 26~27절에서는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재앙, 근심과 슬픔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다는 말입니다.

 

3. 참 지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것입니다.

1) 지혜의 권고는 빨리 듣고 따를수록 유익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든 곳에서 발견됩니다. 지혜의 출처이신 성령은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준엄하게 책망하시며(16:8), 지금도 모든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2) 오늘 본문의 핵심은 23절입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죄의 본성을 따르던 길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3) 우리는 이 지혜의 소리에 민감해야 합니다. 모든 삶에서 주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이 소리 앞에서 늘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본문은 주님께로 돌이킬 때 한 가지 약속을 하는데, ‘지혜의 영을 부어 주며 지혜의 말을 보이리라는 것입니다.

4) 이때 보이리라는 단어의 원어는 야다입니다. 알게 한다는 뜻인데, 이 앎은 단순한 지적 수준의 앎이 아니라 하나되는, 생생하고도 풍성한 앎을 의미합니다. 머리되신 주님의 몸된 삶이 무엇인지 체험을 통해 생생히 느끼고 전인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만족과 기쁨이 바로 주님께로 돌이켜 주님과 보조를 맞춰 한 길을 걸을 때 얻어진다는 겁니다.

 

결론: 항상 오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1)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 곧 하나님이 주시는 오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를 26~2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근심과 슬픔이 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평안이 없다는 말입니다.

2) 그러나 33절에는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 생각의 중심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상실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언약궤를 잃어버린 성전과 같은 것이지요. 그 상실한 마음에는 자연히 악한 마음이 가득 차기 때문에 주께로부터 주어지는 진정한 평화가 임할수 없습니다.

4) 지혜는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주께서 주시는 오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붙들고 오늘의 기도 속에 오늘의 전도를 누리며 살 때 우리의 혼은 성령님의 능력과 은혜 가운데서 날로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그 '상실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 상실한 마음에는 롬1:28-32와 같이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의 마음이 가득 차기 때문에 하늘에서 주어지는 진정한 평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습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따라서 지혜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붙들고 주님 바라보면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따를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붙들고 따름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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