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7. 주일 2 부
사6:1-13 위기속에서 답을 얻은 이사야
13절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웃시야는 아버지 아마샤에 이어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어, 죽는 날까지 무려 52년 동안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그는 통치 후기에 문둥병에 걸려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삶을 살다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통치 전반과 중반에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면서 블레셋과 암몬 등을 정복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점점 퍼져 애굽의 변방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해지면서 교만에 빠지게 되어 제사장 외에는 들어가지 못할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죄라고 말리는 선지자 아사랴의 손을 뿌리치면서 그는 분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웃시야를 치셨고, 그는 문둥병에 걸려 왕궁이 아닌 별궁에 거했고, 성전 출입도 제한당했습니다(왕하 15:1~7, 대하 26:1~23). 유다가 오랫동안 믿고 의지했던 왕은 이렇게 죽었습니다.
1. 웃시야 왕을 의지했었던 유다의 위기
1) 북 이스라엘의 멸망에 이어 남 유다도 위기에 빠질 무렵까지 이사야도 내심 웃시야왕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이사야는 웃시야가 죽자 성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이사야의 기도중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전 세계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보좌를 보여주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높이 계신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보좌 주위에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었습니다. 두 날개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두 날개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두 날개로 날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찬양하고 있었습니다(2~3). 3) 여기서 얼굴을 가렸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라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감히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4)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들의 더럽고 추악한 죄악을 발견하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스랍들의 찬송에 성전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고, 연기가 충만했습니다(4).
2. 이사야의 회개와 죄사함의 은혜
1)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욥처럼 즉각 회개합니다. 5절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악한 마음이 입으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2) 그때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속죄제물이 드려지는 제단에서 숯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의 입술을 지집니다. 그러면서 6-7절에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가득한 이사야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시고, 정결케 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습니다(8).
4)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망설임 없이 자원하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사명
1)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사명은 이사야서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정작 백성들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깨닫고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역에 쓰임받은 이사야는 영광스럽게도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3) 당장의 결실은 없었으나 이사야의 사역은 구약의 복음서라 칭하는 이사야서를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4) 그들 안에 있는 죄악이 그들의 귀를 어둡게 하고, 눈을 멀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은 나 중심의 원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대들에게 이사야서를 통한 복음이 들어가게되고 바멜론 포로생활 70년후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예배를 통해 모든 문제의 답을 얻은 이사야
1) 13절에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셨습니다. ‘거룩한 씨’는 창 3:15 여자의 후손과 같은 단어입니다.
2) 사실 이사야의 당대 사역은 실패가 정해진 사역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 칭함을 받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였지만,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가 듣지 않은 것입니다.
3) 훗날 믿음의 후배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하나님의 사랑이고, 다시 한번 주어지는 기회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남은 자, 거룩한 씨로 심어진 것입니다.
4) 주의 일을 한다고 해서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의 말씀에 따라 그 길을 걸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가치없는 실패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6장은 이사야가 예배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사야가 드린 예배가 바로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일을 해보겠다고 나서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 진정으로 통회하고 자백하는 경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사명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일할 자를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37-38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그 부르심 앞에 이렇게 화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요청에 오직 믿음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