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4. 주일 2 부
사 9:1-7 흑암 세상에 임하신 생명의 빛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사야는 자기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멸망의 위기속에 빠져 있었던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불신앙에 빠진 유다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서 주변국들에게 자주 침공 당하고 나라의 운명은 위태로운 처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한 아기를 통한 유다의 구속을 선포하며 회개를 외치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선지자는 앞선 7:14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본문은 그 예언을 더 확장하여 구체적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기의 이름을 하나만 들었다가 본문에선 여럿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성품, 특성, 인격체 전부를 대변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이름으로 다시 계시했으니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자세히 풀어서 설명한 셈입니다.
1. 임마누엘은 완벽한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1) 사망의 그늘진 땅에 비취는 빛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합니다. 그 분에 대해서 본문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한 아기가 탄생할 것입니다(6). 이 아기의 탄생은 제대로 된 왕의 탄생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수 많은 왕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구현한 왕은 별로 없었습니다. 2) 이 아기의 이름이 다섯 가지로 계시됩니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합니다. 기묘한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강의 왕 모두 하나님을 뜻합니다. 요컨대 언젠가 하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3) ‘정사의 더함이 무궁할 것’이란 영원히 다스릴 것을 뜻하고,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리란 것’은 나라가 영원히 평화로울 것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영원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십니다(7).
4) 이렇게 완벽한 왕이 탄생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해서 나라가 창성케 될 것입니다(3).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제하면 거의 대부분이 수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지 않으면 나라가 창성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 흑암세상에 생명의 빛을 약속하십니다.(1-2절)
1) 1절에 나오는 지명 스불론과 납달리는 이스라엘의 북쪽이요, 갈릴리 서편 국경 지역입니다. 빈번하게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가장 고통당하던 지역을 가리킵니다.
2) 갈릴리 지방은 앗수르와 같은 북방 세력이 쳐들어올 때 제일 먼저 공격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지역은 원래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곳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한 대가로 가장 먼저 징계를 받고 버려져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3) 유대인은 갈릴리를 ‘이방의 갈릴리’ 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갈릴리가 이방 나라와 근접하여 있고 또 그곳에 많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버려진 땅, 어둡고 소외된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빛을 비추신다고 하십니다.
4) 이 빛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혹은 강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완료형으로 선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이 확실해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는 화법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고향으로 삼으셨으며 그곳 사람들 중에서 사도들을 택하셨고 그곳을 복음의 플렛폼으로 삼으셨습니다.
3. 흑암, 혼돈, 공허의 땅에 임한 생명의 빛
1) 빛 가운데 가장 귀한 빛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이 생명의 빛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자에게만 비추입니다.
2)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가지셔서 그 생명의 빛을 비추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3) 따라서 우리는 삶 속에 나타난 놀라운 변화, 풍성한 열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빛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3절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백성들 삶의 변화와 새 하늘과 새 땅에 초점을 맞추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을 압제자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약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징계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빛이 비치는 새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번성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백성의 즐거움을 더하시겠다 하십니다.
결론: 생명의 빛가운데 들어온 자의 삶
1) 택한 백성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구원해 주십니다. 매를 드시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시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이런 믿음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생각들입니다.
2)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습니다. 비록, 실수하고 실족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 주앞에서 감사하며 기뻐할 이유는 4절에 무거운 멍에와 압제자의 채찍과 막대기를 주께서 꺾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기가 행할 일은 인간에게 지어진 멍에, 채찍, 막대기를 다 꺾는 것입니다. 이 셋은 다 노예를 다스리는 도구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4) ‘미디안의 날’ 이란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치신 날을 가리킵니다.(사 10:26)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압제 아래 놓인 것은 사사 시대 기드온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300명의 군인을 뽑아 전쟁에 나가게 하셨고 그나마도 그들이 한 일은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적군들 스스로 혼란에 빠져 서로 죽이다 패망케 하셨습니다.
유다는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했습니다. 앗수르는 힘과 명예와 돈과 권력과 성공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이러한 것을 의지할 때, 안전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로인하여 수치를 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소명을 주시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기는 커녕 정반대로 이방을 개로 여기며 정죄하고 심판했습니다. 복음받은 교회가 이럴진대 세상의 죄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의 모든 것을 다해 우리 구원을 이뤄주셨습니다. 롬 5:8절과 같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하시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신 주님의 사랑을 한껏 누리시며 보좌 중심의 삶속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며 이웃 사랑의 삶을 통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