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1. 주일 2 부
사 9:8-21 그리스도를 외면한 이스라엘
16절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미혹받아 망하는 이스라엘)
오늘의 말씀은 그리스도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신다는 언약이 선포된 뒤에도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교만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을 멸망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세우실 메시야 왕국의 비젼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나 중심, 돈 중심, 성공 중심 상태에서 국가 전체를 패역으로 몰아갔으며, 그들의 구원자이시며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말씀은 죄악된 길을 걸으며 멸망을 자초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주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은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1) 교만하다는 말은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내가 나의 주인노릇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2) 복음주시며 부르시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노로 다스리시는 것은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온 세계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3) 렘29:11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듯 진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4) 지금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이 있습니까? 우리가 시험을 당하고 있다면, 그 시험은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를 연단하기 위한 시험이든지, 그것이 아니면 나 중심, 돈 중심에 빠져가는 우리의 죄악에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해결의 길은 오직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2. 나 중심 상태의 삶과 가르침은 흑암에 직결됩니다.
1) 17절 말씀을 보면 “이 백성이 모두 경건하지 아니하며 악을 행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당연히 나 중심의 삶을 살지만 이스라엘의 경건하지 않는 삶은 흑암에 묶이는 길입니다.
2) 경건하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반대쪽에 있다는 말입니다. 나 중심 상태에서 이웃을 생존경쟁의 대상이나 짓밟고 일어서는 발판으로 삼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행위는 자기만 잘못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잘못된 길로 몰아가는 행위입니다.
3)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을 가진 자가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고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는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거짓 선지자를 꼬리라고 부른 것은 그 사회에서 꼬리라는 말이 악하고 가증스러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들은 마치 개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 말로 예언을 말하거나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꼬리라고 불려진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이 얼마나 중요한 직책인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3. 죄악은 한번 빠지면 자력으로 돌이키지 못합니다.
1) 그들에게는 제사장들도 있었고, 레위인들도 있었고 또한 영적인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예언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교만하고 완악해진 그들은 선지자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인간적인 대안을 들고 거부했습니다.
2) 그들은 교만에 잡혀 자기들에게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곧 성벽이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을 수 있고, 전쟁에 졌다고 하더라도 복구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마치 그것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동쪽으로는 시리아 군대, 서쪽으로는 블레셋 군대를 보내셨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이 감당하기 어려운 군대였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돌아오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17절과 같이 ‘주께서 그들의 장정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장정들은 전쟁에서 죽게되고, 그들의 처자식은 고아와 과부가 되어 고통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4) 이제 주님께서 그 사회의 지도자들을 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그들이 잘못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보내신 것이 기근이었습니다. 그것은 각 사람이 자기 종족의 살을 먹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
1) 멸망을 앞둔 북이스라엘의 모습이나 영원한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상은 심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진노를 해소시켜드릴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2) 다만 언약하신대로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온전한 속죄와 화목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진노까지 다 받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3) 이것이 롬 5:8절에 나온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대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B.C.722년에 완전히 패망했습니다.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아 결국에는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136년 후 남 유다도 BC586년 멸망)
4)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말씀을 듣는 우리도 남유다와 같이 북이스라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회개하며 돌이킵시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뢰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우리가 자랑하고 의지하고 기댈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 입니다.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서 복음을 바르게 말하고 전하는 것이 교회가 살고 국가가 살고 국민이 사는 길입니다.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갔던 북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본문 이사야서에 나오는 모습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임금 마귀와 그 산하의 악령들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나 중심, 돈 중심, 성공 중심의 불신앙에 속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주님의 선한 청지기로 사시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