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3. 주일 2 부
사17:1-14 자기를 지으신 분을 쳐다보라
7절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인생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때부터 각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주어졌지만 주어진 기회를 소진하면 심판정 앞에 서게됩니다. 오늘의 말씀 1-4절까지는 다메섹의 멸망이 선포됩니다. 아람의 수도였던 다메섹은 BC73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됩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아람, 앗수르, 강대국)의 멸망에 대한 말씀과 더불어 에브라임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은 유다와 형제로서 형제가 연합하여 선을 이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메섹과 연합하여 유다를 쳤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메섹을 멸망시키실 때 그와 동맹한 에브라임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북 이스라엘과 아람을 향한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
1)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이후 북이스라엘에서 주도적인 세력이었기에 북이스라엘 왕국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점차 영토를 확장해오던 신흥 강국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해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아닌 다메섹을 의지했습니다.
2) 북 이스라엘은 다메섹과 동맹을 맺으며, 남 유다와의 전쟁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북 이스라엘 역시 다메섹과 그 운명을 같이 할 것이 예언됩니다. 말씀 마무리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며 엄중한 뜻임을 강조하십니다.
3) 4-5절에는 앞서 말씀하신 일이 이뤄지는 날, 이스라엘이 처하게 될 비참한 현실을 말씀하십니다. 대대손손 영광을 누렸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등진 이후 수차례 경고를 주셨으나 가볍게 여겼던 결과였습니다. 추수자에 의해 곡식은 다뽑히고 이삭조차 남지 않은 황량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4) 그러나 6절에는 앞서 다메섹을 향한 예언과는 달리 미미하지만 남은 자들이 존재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감람 나무를 흔들때에 가장 꼭대기에 과일 두세개가 남았다!라고 말합니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차마 손에도, 장대에도 걸리지 않았던 몇개의 열매처럼, 그 가운데 남은자가 있을것이다!라는 것입니다.
2. 그 날에는 모두가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리라.
1) 7-8절에 보면 “그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회개해야 되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2) 그날 이후에 벌어질 참혹한 일들이 9-10절에도 이어집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속의 세상 헛된 것들에 속아 주어진 기회를 허송하고 심판의 자리에 서는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날에는 제아무리 견고한 성읍을 쌓았을지라도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와 같이 황폐할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3)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백성으로 택함받았으나 복된 사명을 망각한 채 함께 멸망의 길을 가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는 성소 지성소가 중요하지만 이방인의 뜰, 여인과 어린이의 뜰, 기도의 뜰도 중요한 것입니다.
4) 이처럼 비극적 상황을 마주하게 될 원인은 10절과 같이 분명했습니다. 결코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도리어 이방의 신이 그들의 땅에 그들의 마음에 심기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심판의 날 세계 열방을 향한 예언(12-14절)
1) 12절의 ‘슬프다’는 원문에 비통한 심정을 나타내는 탄식의 말입니다. 하나님과 이사야는 탄식 가운데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많은 민족들이 각자의 이권을 위해 무섭게 몰려와 충돌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2) 그러나 제아무리 강한 열방이 몰려와도 하나님의 꾸짖음으로 표현된 심판 앞에서는 ‘바람 앞에 겨의 흩어짐’과 ‘폭풍 앞에서 떠도는 티끌’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 세력이 어마어마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그저 연약한 피조물들의 군집에 불과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이사야는 언약붙든 하나님의 백성을 노략하고 강탈한 자들이 받게 될 몫과 보응은 지옥같은 삶과 영원한 지옥형벌이 될 것임을 밝힙니다. 우리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를 붙들어야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알아야합니다. 세상에 속아 세상 풍조를 따라 살다가는 어느새 주어진 기회를 다 소진하고 심판정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4) 대단해 보이는 세상의 헛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리스도 언약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최후의 심판이 가까움을 명심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말씀 안에서 믿는 주님과 모든 삶이 하나 되기를 힘쓰며, 주의 사랑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기위해 기도해야합니다.
결론: 평상시에 자기를 지으신 분을 쳐다보라
1) 다메섹에 관한 경고는 아람과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함으로 마칩니다. 본문의 내용은 일차적으로 아람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지만, 또한 이것은 앗수르와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이중적인 예언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24장에서 주님은 마지막 때에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2) 이때의 전쟁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일어나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나라와 나라 또는 민족과 민족이 싸울 것이지만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당시 앗수르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무서운 힘으로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들을 제어할 나라가 없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3) 그러나 그들의 강함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그들은 오히려 쫓기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13-14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하실 때 그토록 강하게 보였던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을 뿐이었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에 불과하다고 하셨습니다.
4) 문제는 믿는 우리가 누구를 반석으로 삼고 있느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물질적인 부와 힘과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반석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제거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들이 보잘것없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기 남은 자들로 묘사된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심판하실 때에도 그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장차 그들을 통하여 야곱의 집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시대의 남은자들입니다. 남은자들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보좌 중심의 삶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절과 8절에 “바라본다”는 말은 예배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시는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시며 승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