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4. 주일 2 부
사23:1-18 부자 두로와 시돈에 관한 경고
18절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이사야 13장에서 시작된 열방을 향한 경고가 23장의 두로의 경고로 일단락됩니다. 왜 이러한 경고를 계속하시는가를 이사야 전체적인 흐름을 통하여 한번씩 점검하고 보아야 합니다. 창3장이후 모든 각 사람은 그리스도 언약붙들고 구원받기 위해 각사람이 인생을 유일한 기회로 삽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운행하시는 목적도 구원사역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언약의 완성은 사 66:22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이실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시는 작업이 선지서의 경고 안에 담겨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라고 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 경고와 심판을 하고 계시는 이유
1) 창3장 이후 이 세상은 사탄이 세상 임금이 된 세상이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흑암 충만이 지속되어지면 경고와 심판을 통하여 악을 무너뜨리시고 그리스도 언약을 갱신하여 세우시는 것입니다.
2) 그러한 경고와 심판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언약 붙든 자를 중심으로 역사하십니다. 이사야서는 다윗 언약을 중심으로 경고와 심판을 하고 계십니다. 다윗 이후의 왕들의 역사에서 계속되는 심판의 경고는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담, 에녹, 노아, 아브라함--)
3) 이사야 11:1-5절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합니다. 이새의 줄기를 통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하심으로 기존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면서 동시에 주변 열방에 대한 심판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다윗의 언약과 무관하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4) 다윗 언약이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으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언약을 버리고 자기들의 힘을 의지하고 자기들의 무기와 성벽과 저수지를 파는 것으로 자기의 구원을 삼고자 하는 자들과 나라에 대하여 경고와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2. 두로를 향한 경고와 심판 예언
1) 두로왕 히람은 다윗과 솔로몬과 교재가 두터웠고 성전건축에 헌신하였습니다. 부유해지며 세상에 묶여 나 중심에 빠지면 끊임없이 물질 중심과 성공중심의 삶을 추구합니다. 경고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고 주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2) 본문은 두로에 관한 경고인데 두로는 지금의 레바논(옛 페니키아) 지역입니다. 페니키아의 모성이 시돈이고 무역중심의 자성이 두로입니다. 이 두로가 전 지중해 연안의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로가 나 중심, 물질 중심이 극에 달하여 경고를 받는 것입니다. (13년, 알렉산더, 60m)
3) 1절에 보면, 두로의 배들이 다시스를 돌아서 무역을 하고 돌아오다가 깃딤, 지금의 키프로스 섬에 들렸을 때에 두로의 멸망 소식을 듣게된다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무역을 하고 기다리던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는 중에 두로가 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4) 2-3절에서는, 이 두로와 거래를 하던 해변 거민들에게도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역을 하던 나라 중에 애굽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곡물 수출을 두로가 주로 담담하였는데 이러한 두로의 멸망은 여러 주변 국가들까지 놀라운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3. 이 유명한 두로가 망하는 것은 누구의 계획입니까?
1) 8-12절에 보면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여호와께서 두로를 망하게 하십니까? 극에 달한 그들의 교만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역으로 인하여 엄청난 부가 축적되자 교만하여 진 것입니다.
2) 9절에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 영광과 부귀와 존귀아래 교만이 선 것을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그것을 향하여만 달려갑니다. 겸손히 주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고 선한 청지기 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유다와 주변의 열방까지 경고와 심판을 통해 구원사역을 이루어 나가시는 도구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4)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바다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을 흔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흔들어 버리시니 두로의 멸망이 마치 바벨론이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였던 것처럼 망한 것입니다. 그러시며 세계의 흥망성쇠가 여호와의 손에 있음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유다의 회복과 두로의 회복
1) 15-16절에 두로가 심판을 받아서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되어 다시 회복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회복으로 다시 무역으로 이익을 가지게 되나 그것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아니하고 주의 백성들이 먹고 입을 자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2) 에스라 1: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배경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70년 만에 회복되어 오는데 두로도 70년 만에 망하였다가 다시 회복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에스라 3:6-7절에 “칠월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 7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하게 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4) 두로가 망하였다가 다시 회복되어 무역을 하게 되는데 그 회복이 자기 나라를 위한 무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일에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기 위한 회복임을 볼 수 있습니다.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수운하여 이스라엘의 성전을 지은 것은 솔로몬 때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계 18:4-20절에 보면 바벨론이 전 세계 무역의 중심입니다. 그 무역으로 인하여 온갖 사치와 음행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바벨론이 일순간에 망하게 되자 그 바벨론과 거래를 하던 온 세계의 상고들이 울고 애통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맡겨진 일에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그를 통해 인류 구원사역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를 인류 구원사역을 위해 이루어 가십니다. 두로를 누가 망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그러면 회복은 누가 시키십니까? 하나님이. 왜 회복을 시키십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도구로 성전 재건하는 일에 목제와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백성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은 언제나 주님의 언약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는 원래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것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남은 육신의 삶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귀히 쓰임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