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5. 주일 2 부 (교인들에게 화가 임하는 이유)
사29:15-24 유다에게 화가 임하는 이유
15절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식적인 예배 의식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고 급기야는 이스라엘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형식적인 제사와 예배가 가져오는 것은 영적인 무지와 위선적인 삶을 가져옵니다. 교회가 이리되면 온 세상에 영적 기근이 들이닥치게 된다 하셨습니다. 아모스 8:11-12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본문 13절에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 고 하셨습니다.
1. 교인들도 나 중심의 죄 가운데 빠지기 쉽습니다.
1) 불신 풍조가 삶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기독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마저 나 중심, 돈 중심 상태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일 예배에 출석하면서도 그건 한낱 종교의식이고 실제 삶은 내 소견에 옳은대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속히 회개하고 구원의 방주되신 주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생각 깊은 것이라도 아시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헤아리고 계신다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속이고 나 중심의 죄 가운데서 살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과 그 빚은 토기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것 처럼 인간의 생각과 계획을 잘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3)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믿는다는 교인들이 하나님을 속이고 나 중심의 죄악 속에 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15절은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의 생각대로 사는 자들은 화가 있을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16절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토기장이와 그릇의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4) 교회에서는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처럼 하지만, 실재 삶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문제였으며 오늘날 우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겸손한자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1) 시대마다 지역마다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남은자들이 있습니다, 엘리야 당시에 바알에게 무릅을 꿇지 않은 7,000명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이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아멘하여 받는 자들이 바로 남은자가 되는 것입니다.
2) 17-24절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남은자들을 신실하게 사랑하시며 이들을 통해 구원을 이루십니다. 이사야는 이것에 대해 19절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자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 사이에서의 겸손입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가 자기 엄마를 의지하는 것 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겸손한 자들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아있는 이 겸손한자들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아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4) 22-24절의 내용입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백세에 낳은 독자 이삭도 드렸던 아브라함과 불신앙적인 삶을 살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된 야곱을 말씀하시며 현재의 유다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구원하시겠는 것입니다.
3. 나를 지으사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
1)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근본 목적은 사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인하여 행복하시고 나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한 사랑의 관계가 우리의 본질입니다.
2)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같은 우리가 엄마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누리면 됩니다.
3) 히13:8절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이신 주님은 영원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사 구원하셨고 영원토록 사랑으로 붙들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4) 세상에서 우리의 삶 속에 어렵고 힘들 때가 왜 자꾸 찾아오는지, 왜 그것들이 필요한지는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사 우리를 정금같이 만드신다고 하셨습니다(롬8:28).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할 것입니다.
결론: 택한 백성들에게도 화가 임하는 이유.
1) 오늘의 본문 15-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일을 나 중심되어 하나님 몰래 어두운 데에서 행하고 있었기에 화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 반역이 되고 자신은 마귀와 지옥 권세에 묶이게 됩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께 가까운척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고(13절), 자신들의 일을 어두운 데해서 행하고 있었습니다(15절).
3)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 조차도 자기들이 어두운 데에서 몰래 행하는 일들을 보지 못하시고 모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사29:13).
4) 그러면서 16절을 보면 그들은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사실은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지으신 이에게 대하여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여겼습니다(16절). 그들은 진흙과 같은 존재이면서 토기장이가 되신 창조주 하나님도 자신들처럼 진흙 같이 여기고 있었습니다(16절).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너희는 잘못되어도 아주 잘못되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6절). 이것이 유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의 모습이라면 뭔가 잘못되어도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두운 데에서 몰래 하나님께 범하고 있는 나 중심의 죄를 모르고 계실까요? 입술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삶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성령으로 항상 함께 계십니다.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께 모든 관심을 고정시키고 주시는 말씀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매일 매일 깨닫고 누리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