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1. 주일 2 부
사43:1-13 두려워 말라 너는 내 것이라
사42: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
오늘 살펴볼 이사야 43장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앞부분인 42장 25절과 대조를 이룹니다. 앞 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무섭게 책망하셨으나 43장 1절에서는 무한한 위로와 격려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러한 급진적인 전환은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보여 줍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진노하실지라도 그 목적이 선하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진노하신 후에는 반드시 자비를 베푸셔서 상처를 어루만져 치료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살핌은 부모가 자기 자녀를 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1. 구원의 약속(1-7절)
1) 1절 말씀은 원어에는 이제(but now)’로 시작합니다. 즉 앞에 나온 것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42:18-25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고, 아무리 보여주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 위로하고 격려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면서 그 호칭을 ‘야곱아’,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야곱’의 뜻이 ‘발꿈치를 잡은 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라는 말입니다.
3) 피조물인 사람이 어떻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 실제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져 주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그렇게 말을 듣지 않아도, 또 허물이 많아도, 다시 위로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하여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에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유다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아직 끝이 아닌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택함 받아 믿는 자는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1) 낙심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믿는 나를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속’은 어떤 사람의 가까운 친척이 그가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아 주는 것, 노예였던 사람을 돈을 주고 사서 해방시켜 주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크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룻밤에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나의 아버지시고 구속자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자는 어떤 일을 당하여도 낙심할 이유가 없는 둘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계획 속에서 지명하여 부르시고, 당신의 소유를 삼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유됨은 유한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4) 본문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보호하실 것인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도무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의 산을 만나기도 하고, 결코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환란의 강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3. 믿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1) 아담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지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인류 구원 사역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와 지역지역에서 먼저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을 사용하십니다.
2) 본문 8-10절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증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전도자를 통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게 하십니다. 증인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게 하시고, 복음을 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세우신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그리스도의 종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법정을 여시고, 믿는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셔서 오직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4) 그런데 그 시대에 전 세계에 증인으로 세운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복음을 말하지 못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흩으셨으며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전 인류의 영적 상황을 체험케 하시고 그리스도의 모형인 고레스를 체험케 하신 것입니다.
결론: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주이십니다.
1) 본문 11-12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습니다.
2) 특히 11절 앞부분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바로 나, 바로 내가 여호와이다’입니다. ‘나(여호와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언제 어느때나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구원주이십니다. 나는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3)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우리의 구속자시요 우리를 부르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떠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신자와 달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4)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복된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야곱아”라고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야곱이라고 부르신 데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하여 선민의 조상이 되었지만, 본래는 장자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형 에서의 사려 깊지 못한 성격과 시장 끼를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샀고, 그 후에는 부친을 속이고 형이 사냥 간 사이에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부친을 속이고 형의 원한을 사고 외삼촌과 원수가 된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야곱아”라고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여 이긴 후에 얻은 영광스런 이름입니다. 그 뜻은,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 날부터 야곱은 ‘이스라엘’로 불렸고, 선민의 조상답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아 두려워 말라, 너는 내 것이라 하셨습니다. 항상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