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2. 주일 2 부
사 63:7-19 여호와는 우리 아버지시라
16절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기도로 숨을 쉬고 기도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선 탄원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너무나 힘이 듭니다. 도와주십시오’하며 하소연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탄원기도를 하다보면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기도는 탄원 기도에서 고백의 기도로 바뀝니다. 본문 15절에 살려달라고 외치며 하소연하던 기도자는 16절에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십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아버지와 나 사이에 껄끄러운 감정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고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절규 속에서 갑자기 이런 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1.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총
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다 택함받은 것은 아닙니다. 실례로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들 수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인 애돔족속은 본문1-6절에 심판받아 진멸당하는 대표적 족속으로 거론됩니다.
2) 이스라엘은 구약의 복음을 신약시대와 전세계로 전할 민족으로 택함받았습니다. 그들이 잘나고 우수하고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특별히 구원받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택하심은 지상 최고로 큰 은총인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할 때도 그들을 떠나시지 않고 함께 하시며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셔서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4) 여호와께서는 택한 이스라엘을 성령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14절). 그러나 10절에 보면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패망케하셨으나 포로에서 다시 귀환케 하신 것입니다.
2. 탕자에게 임한 아버지를 향한 마음과 발걸음
1)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고 나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는 것이 고난속에서 받는 최고의 응답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닌데 주인노릇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리스도를 약속하셨고 피제사를 통해 예배케 하셨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성전회복의 축복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돌 제단--> 성전 --> 지역 교회당)
2)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가르침으로 이를 깨닫고, 신약 교회의 그림자인 회당예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이스라엘은 폐품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위대한 걸작품임을 깨달아가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적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3) 그러나 현실은 폐허로 변해버린 예루살렘과 경계하고 방해하는 주변의 상황입니다. 눈앞의 현실에 속으면 또 묶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땅에 파송되어 있습니다.
4) 그리스도 언약을 붙든 우리는 영적인 기본을 회복하고 천국 보좌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15절에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자녀인 나의 존재와 가치가 살아나고 보좌의 망대가 내 안에 세워지게 됩니다.
3. 이스라엘의 성전 회복을 위한 기도
1) 이스라엘은 성전을 기억하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전에는 주의 백성이 주의 성소를 차지했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원수들이 주의 성소를 짓밟았습니다.” (18-19절) 성전이 이미 이방인의 손에 의해 짓밟혔기 때문에 가족이 다 헤어졌고 일터도 다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혼의 고향인 예루살렘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과거에는 성전을 섬기며 예배도 드리며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소중한 성전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3)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망입니다. 목마르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영적인 태도를 다른 말로 하면 가난한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주님만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은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쥐어짜는 고백의 기도를 하다가 문득 16절에 "아버지"라는 어휘가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어찌하여 얼굴을 돌리시나이까?"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미소를 보고 싶어 울부짖는 탄원입니다. 이 기도의 응답은 주님의 초림과 재림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결론: 우리는 이래 봬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패망당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끌려갔고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성전과 예루살렘 성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등을 돌리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의 회당제도는 신약시대 각 지역교회의 기초가 됩니다.
2) 우리가 이 땅의 밑바닥에 있는 것 같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와 연결되어 천국 대사로 이곳에 살다가 있는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받으며 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최고의 사람입니다. 우리 삶의 출발은 항상 천국 보좌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3) 우리의 기도와 삶이 우리 육신의 현실에서부터 출발하면 안됩니다.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엡2:6절)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나 중심되어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는 나머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만을 구하기에 급급합니다.
4)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저를 있게하신 이곳을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보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저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의 나라가 이곳에 임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하셨습니다.
14절에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근심케 하는 백성에게 징계의 채찍을 드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시지만 결국 목자가 초원으로 양떼를 이끌 듯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끄셨습니다.
15절에서부터 택한 백성을 구원해 달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간절한 중보기도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중에 누가 영적 이스라엘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세속의 길로 걸어가고 있지만 본질적인 신분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수 있기 때문에 태신자 명부를 놓고 기도해야합니다. 필요한 모든 것은 주께서 풍성하게 공급하십니다. 보좌의 축복을 누리시며 각자의 처소에서 복음전도의 등대를 세워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