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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2:8-15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

by 모세스 posted Oct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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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4. 주일 1

 

딤전2:8-15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신자는 주안에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중보자인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지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상태에 있다면 그것은 육신과 세상에 묶인 결과입니다. 빨리 주님께 나아가 맡기고 주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시대시대 마다 흑암세력들은 복음과 기도를 막아왔습니다.

 

 

1. 당시 에베소 교회의 상황

1) 당시의 남자 교인들도 윗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주변 경쟁자들과의 다툼에 휩싸여 중보자로서의 축복과 권세를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속지말고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2) 아데미 종교의 특징은 여성 신과 여성 중심의 매우 체계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도들은 여성 사제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권위에 절대복종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에베소에 있는 독특한 종교 문화였습니다.

3) 그들은 아마도 여성의 우월성을 말하며 남성을 지배하며 가르치는 것을 영적인 해방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들은 성관계와 혼인과 자녀 출산의 포기를 요구하는(딤전 4:3 참조) 영지주의 이단 교리도 전했던 것으로 보이며, 바울은 그런 여성들이 행하는 잘못된 가르침을 금한 것으로 보입니다.

4) 에베소의 특정 영지주의에서는 여성을 생사의 근원, 우주의 어머니로 보았고, 신성한 창조의 진리가 여성 안에 있기에 여자를 찬미하고 경배해야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본문은 아담의 우월성이나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한 영지주의적인 창조의 순서가 잘못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2. 교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도들을 향한 교훈

1) 11-12절의 조용히 배우라는 말은 순종을 나타내는 방식을 보입니다. ‘조용히라는 말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이 많으면 옛사람의 생각과 불평불만의 말이 나오기 쉽고 자칫 불신앙의 포럼이 되기 쉽습니다. 순종은 자신이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여성도는 아담한 옷을 입고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아담한 옷은 음란하거나 혹은 호화로운 복장과 대조될 것입니다. 바울은 여성도가 땋은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단장치 말라고 교훈합니다.

3) 12절은 여자의 가르침에 대한 총괄적인 금지가 아닙니다. 분명히 브리스길라도 아볼로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18:26). 복음을 전파하는데 남녀 차별이란 있을 수 없고 복음 전파에는 분명히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지요. 바울은 여성들을 자신의 동역자로 여기는데 동역자의 의미는 분명히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포함합니다.

4) 초대교회는 원칙적으로 여성이 그들의 받은 은사에 따라 가르치거나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은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여성 사제들이 장악한 에베소의 종교 풍습들이 교회에 퍼지는 것을 막는 가르침으로 보입니다.

 

3. 여 성도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

1) [15] 잉태와 출산 양육은 여자의 의무이며 특권이고 여자 성도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된 사역입니다.

복음으로 답난 부모와의 사이에 잉태된 자녀는 사무엘과 같은 자녀로 키울 수 있습니다.

2) 언약붙든 부모를 통해 잉태된 자녀는 복중에서 어머니와 함께 신앙생활이 가능해 집니다. 출산하여 모세처럼 양육되어지면 그 아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귀히 세워질 것이며 부모의 영원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3) 15절은 여자들이 자기 자녀를 이끌고 천성길을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의 여성우월주의적인 영지주의를 배경으로 추정컨대 이 말은 여성들에게 해산을 하나님의 벌로 보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4) 실제로 출산 중 사망률이 무척 높았던 당시 출산은 여성에게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두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저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해산은 언약붙든 여인의 가장 귀한 사역임과 면류관 받을 수 있는 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 나중심에서 벗어나 거룩한 손을 들어야 합니다.

1) 분노와 다툼이 있는 곳에 교회의 일치와 화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남자들이 성냄과 갈등을 극복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손을 들어기도할 때 교회는 평화와 안정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2) 바울은 여자들이 공동체 예배에 나오기 위해 단장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부 부유한 여성들이 사치스럽게 치장하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성들이 자신을 단장할 때 경건미 있는 검소한 옷을 입을 것과 특히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꾸밀 것을 권고합니다.

3) 본문은 아데미 신전의 영향을 받아 남자를 가르치며 지배하길 원했던 에베소 교회의 여성들에게 그런 차별 구조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연결됩니다. 복음은 남녀 차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본문은 하와가 아담보다 더 큰 죄를 지은 결과로 여자들에게 출산의 저주가 주어졌으며 여자가 출산의 저주를 벗어나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일부 영지주의 가르침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정절과 믿음으로 사랑과 거룩에 거하여 구원받는 것이며 "잉태 출산 양육을 통해서" 구원 사역의 동역자로 귀히 쓰임받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교회에서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해석들은 피해야 합니다. 복음은 차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교회 문화는 남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합니다.

 

 

 

 

 

부부는 합력하여 이뤄가는 "잉태와 출산 양육을 통해" 한 개인이 가장 빠르게 구원받아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재창조사역의 동역자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