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9. 주일 1 부
마2:1-12 구원코자 오신 하나님과 사람들의 반응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 ?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본문은 예수님을 경배하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메시야를 대망하던 이들은 특별한 별의 징조를 보고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을 소동하게 하였다는 것은, 동방박사는 단순히 몇 사람이라 볼 수 없고, 많은 수행원을 거느린 사절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이들이 온 이유가 알려지면서 유대 사회를 술렁이게 했을 것입니다.
1. 메시야의 오심을 향한 헤롯과 유대인들의 반응
1) 로마에 아부하여 큰 뇌물을 쓰고 유대의 왕이 된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에 대한 소식이 매우 불쾌하고 불안하였습니다. 로마의 세력을 업고 유대를 통치하는 자리에 있는 그에게 있어서는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도전이고 위기였기 때문이지요.
2) 동방박사들의 질문에 당황한 헤롯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날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물었고, 그들은 정확하게 미가서 5:2절을 인용하여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알지만, 성경의 핵심 언약인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관심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히스기야때 바벨론 선교를 위해 역사하셨던 하나님.
3)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던 당시 예수님께 경배했던 이들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던 일부 목자들과 예루살렘 사람 시므온과 안나라는 여선지자와 동방에서 온 박사들뿐이었습니다. 당시에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긴다고 여겼었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성경 지식은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관해 관심은 없었습니다.
4)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중심, 세상 중심속에 휩싸여 육신의 일과 세상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가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르나 나 자신과 세상 것들을 위하여 가능하시면(?) 도와주시라는 기도 수준입니다. 나와 세상의 것들을 우상으로 붙들고 있는 종교인의 상태입니다.
2. 오직 메시야께 관심을 집중하였던 동방 박사들
1)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 중에는 성경과 이사야 선지자의 영향을 받아 복음붙들고 오직 그리스도와 선교에 삶의 방향을 맞춘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왕의 신하로서 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으며 전 바벨론에 복음을 전하는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2) 다니엘 4:9에 느브갓네살왕은 다니엘을 박수장, 당시 지혜자를 박수(magicians)라 불렀는데 그는 그들의 대표였습니다. 다니엘은 성경 필사는 물론 다니엘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초림과 세상 끝날까지의 예언을 꼼꼼히 기록하고 이를 후대의 지혜자들에게 계속 가르쳤습니다(바벨론 선교센타).
3) 느브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전국 각처에 보낸 조서의 내용을 한가지만 보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더미를 삼을것이니라”(단3:28-29)※(단6:25-27다리오)
4) 이로 인해 오랫동안 바벨론 박사들 중에는 성경에 박식하며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보아 우리는 동방 박사들이 평소에 하나님을 섬겨 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찾아온
분은 유대인의 왕(메시야)이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별을 보고 유대로 왔습니다. 그들이 페르샤에서 왔다면, 약 1,500km나 되는 길을 왔습니다.
3. 오신 메시야를 뵙고 경배하였던 동방박사들
1) 특별히 다니엘서에는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이러한 지식을 가진 동방박사들이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던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움직이는 큰 별을 따라 메시아를 찾아 경배하러 온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벨론에서 왔다면 목숨을 건 힘들고 위험한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2) 동방 박사들은 그들이 깨달은 바에 따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유대 땅에 아기의 몸으로 태어나실 언약을 알았고 그리스도의 초림을 대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 은혜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께서 강림하셨음을 알았기 때문에 멀리서 이 왕께 경배하려고 예루살렘을 찾아온 것입니다.
3)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상식속에는 왕이라면 유대의 옛 수도 예루살렘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겠지요. 베들레헴으로 인도받은 그들은 두 살 무렵의 어린 예수님께 메시야께 드리는 “황금, 유황과 몰약”을 드리며 경배합니다.
4) 11절에 ‘집에 들어가’라는 말(마구간이 아니다)과 ‘아기’라는 표현(갓난아기가 아닌 막 걸음마를 하는 아기)은, 동방박사들이 온 때가 예수님 탄생 직후가 아니라,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대략 1년 이내)였을 것임을 추측하게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뵙고 경배한 시기는 목수 요셉이 베들레헴에 거처를 마련하여 살고있었던 때의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임마누엘의 축복속에 있는 우리의 삶은 어떤가
1) 박사들의 일행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경배하고 그들은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다른길로 돌아갔습니다. 타국에서 왕명을 어기고 돌아가다가 잡히면 위험할 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주신 말씀따라 인도받습니다.
2) 주께서 성령으로 항상 함께 계시는 축복속에 있는 우리는 어떤길을 걷고 있습니까? 헤롯왕이나 종교 지도자들처럼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삶을 살고있지는 않습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처럼 가까운 거리인 베들레헴까지도 가보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인생의 목적은 그리스도 붙들고 사면복권받아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하며 주변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되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역자로 쓰임받는 것입니다.
4)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모시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소한 것으로 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옛적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십니다. 마태복음은 특별히 예수님의 왕 되심을 강조하는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왕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왕을 배척하느냐 두 가지 반응뿐입니다. 그리고 이 두 반응은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왕중에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믿는 우리는 주님을 왕으로 받아들이고 왕으로 모시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영접하여 모셨지만, 여전히 옛 습성인 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주님의 왕권을 거부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내 삶의 중심을 주님께 두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왕이 되어 살고자 합니다. 이게 실패와 연약의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이 왕이신데 내가 나의 왕노릇하면 반역입니다.
.왕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는 일을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에 두시고 항상 동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