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강
구원받은자가 드리는 소제의 삶(레위기 2:1-16)
오늘 본문은 소제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제는 속죄 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기쁨으로 충성을 다짐하는
의미로 드렸던 제사입니다. 소제는 레위기 1-7장에 소개되는 다섯 제사 중에서 유일하게 동물이 아닌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레위기 1장의 번제에서 흠 없는 수컷, 즉 가장 좋은 동물을 여호와께 드려야 했던 것처럼, 소제에서도 최고 상등품인 고운 가루를
여호와께 드립니다. 번제가 가죽을 제외한 동물 전체를 불에 태웠다면 소제는 단지 한 움큼만 기념물로 불에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들에게 드려서 먹게 하였습니다.
1.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1)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인데, ‘선물, 조공’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소제는 예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일종의 ‘선물’이나
‘조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감사 예물이 바로 소제입니다.
2) 소제는 독립적으로 드려지기도 했지만, 대개는 다른 동물 제사에 포함되었습니다. 즉 번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소제도 함께
드렸습니다. 소제의 주요 제물은 고운 가루(자신)와 소금(언약)과 기름(성령)과 유향(기도)이었습니다. 고운 가루와 기름 위에
유향을 놓아야 합니다. 유향은 유향나무의 수액을 건조시켜 만든 고급 향료입니다.
3) 소제는 고운 밀가루로나 또는 익혀서 바쳤습니다. 익혀서 소제를 드릴 경우 화덕에 굽거나 아니면 철판에 굽거나 아니면
냄비에 익혀 요리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유향을 넣도록 했는데, 이 유향은 익히지 않은 곡식으로 소제를 드릴 경우에도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은 다음 넣도록 했습니다.
4) 그리고 값비싼 제사용 동물을 속죄제로 드릴 수 없었던 극빈자의 경우에는 소제로 자신이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하는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는데(레5:11-13), 비싼 기름과 유향을 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제는 보통 짐승을 태우는 번제와 함께
드렸습니다.
2. 소제물에 넣어야할 것과 넣지 말아야할 것(11-13절)
1) 소제물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은 누룩과 꿀입니다. 누룩과 꿀은 ‘변질과 부패’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누룩처럼 부풀리고,
꿀처럼 겉만 달콤하게 포장하는 그런 모습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모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2) 누룩과 마찬가지로 꿀도 곡식 가루에 발효를 유발해서 재물을 변질시킬 수 있고 쾌락을 상징하기 때문에 금지되었습니다.
소제를 하나님께 순종과 충성을 표시하는 조공의 의미로 볼 때, 부패를 상징하는 누룩과 쾌락을 상징하는 꿀을 금지한 것입니다.
3) 소제물에 누룩과 꿀 넣는 것을 금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13절에서는 ‘소금’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하여 모든 소제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넣으라고 강조합니다. 소금은 부패와 변질을 막아주는 무해한 방부제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소금은 고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4) 소금은 기능상으로 맛을 내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이지만, 고대 근동에서는 언약 당사자들끼리 소금과 떡을 함께 먹음으로
언약의 불변성을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언약을 두고 ‘소금 언약’이라고 말합니다(대하 13:5).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하셨습니다.
3. 소제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배려
1) 소제는 보통 다른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에 이어서 소제를 드리곤 했습니다. 형편상 비둘기도 바치기 어려운 사람들은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로 속죄제를 드리고(레5:11-13),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짐승을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값비싼 재물인가’가 아니라, 제사자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2)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소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익힌 소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 중에서 한 줌을 기념물로 취해
번제단 위에 태워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성막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몫으로 주셨습니다.
그러시며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3) 우리는 교회중심의 삶을 살며 24시 산 제사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라가 하나님께 값비싼 것을 드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고운 가루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들을 품고 살아가는가?’가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4)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 없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는 능력 없음을 겸허이 인정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결론: 너희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라.
1) 14-16절은 첫 이삭으로 농산물의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에 대한 규례입니다. 첫 이삭을 소제로 드릴 경우에는 먼저
알곡을 불에 볶은 다음에 가루로 빻아 기름과 유향을 얹어서 드렸으며, 제사장은 기름 섞인 찧은 곡식 가루를 유향과 함께 한 줌을
취해 기념물로 불살랐습니다.
2) 첫 이삭을 드린다는 것은 수확한 모든 소산물이 여호와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행위이며 제사드리는 자는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며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기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첫 열매를 드려야 했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온전한 순종과 헌신이야말로 번제의 참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번제에 뒤이어 이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주님처럼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소제는 예배자의 삶과 사역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산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소제와 제사를 통해 성도들에게는 교회와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워줄 필요와 의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물은 하나님께
바쳐졌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자기의 제사장들을 먹이셨습니다. 별도의 수입 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구별된 사람들이 그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교회와 성도는 사역자들의 생계를 챙길 수 있어야 합니다.
번제는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에게 소제는 우리
일상의 산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백성으로 감사와 충성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소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감사하는 예물입니다. 우리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여 언약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야 하는 24시 산 예배를 가르쳐 줍니다. 고운 가루로 변화된 우리 각 사람이
남은 삶을 주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 예배로 드려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